진공관

선정의 변 김현아

방학을 가지게 된다면 내내 틀어놓고 싶은 앨범. 빵 터지는 청각적인 임팩트는 없더라도 그만큼 편안한, 나른한, 아련한(?), 용기를 주기도 하는 제 삶의 여러 장면들을 가장 많이 함께한 앨범입니다.

일전에 아마 재형님이 음악은 그때 그 순간으로 나를 데려다 놓는다는 말씀을 하신 적이 있는 것 같은데, 이 앨범의 트랙들은 그걸 넘어서 제게 하나의 루틴처럼 기능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무언가 꼭 끝마쳐야 하는 날에는 ‘기필코’를 반복 재생해 들으며 “그래도 내가 선택한 나의 길 / 기필코 나는 해내고 말테야”를 스스로 왼다든지, 한 챕터를 마무리하는 시점에는 ‘GOOD BYE’를 듣는다든지 하는 것들이 그것이에요.

원래도 이상순의 음악을 좋아합니다. 들으면 편안해지고 그 가운데에서 뭔가 차오르는 충만함, 잔잔한 행복 같은 게 생기기도 하고 어떤 장면이나 풍경을 만들어내는 음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상순이 암스테르담 유학 시절, 절친인 김동률이 놀러 와서 만든 앨범이라고 어디에서 들었는데(나무위키엔 없네요..) 그래서인지 듣고 있으면 유럽에서 보내는 휴가 같은 감성이 들기도 하네요.

두 음악가가 쉬는 방식으로 만났을 때

《Day Off》는 김동률과 이상순이 함께 만든 베란다프로젝트의 앨범입니다. 무거운 감정을 크게 펼치는 발라드로 익숙한 목소리와, 리듬과 질감을 섬세하게 고르는 기타리스트가 만났습니다. 이름난 두 사람이 만났다는 정보보다, 서로를 만나 어떤 습관을 내려놓았는지 듣는 편이 흥미롭습니다.

출발은 암스테르담에서의 만남이었습니다. 유학 중이던 이상순을 김동률이 찾아갔고, 기타를 만지며 시작한 작업이 여러 차례의 방문과 서울에서의 녹음으로 이어졌습니다. 한순간의 여행에서 음반 전체가 완성됐다기보다, 쉬는 시간의 감각을 오래 이어가며 한 작품으로 만든 과정입니다. 음악에서 느껴지는 휴가의 공기는 이런 제작 배경과 자연스럽게 만납니다.

작은 음악을 만드는 두 사람의 능력

김동률의 작곡과 목소리는 큰 서사를 만들 수 있고, 이상순의 연주는 짧은 리듬만으로 곡의 온도를 바꿀 수 있습니다. 《Day Off》에서는 각자의 장점을 가장 크게 과시하는 대신, 편안하게 머물 수 있는 크기로 조절합니다. 잘하는 것을 얼마나 많이 넣느냐보다 얼마나 알맞게 남기느냐로 아티스트의 능력을 느끼게 합니다.

발매 당시 정희웅의 오마이뉴스 리뷰는 복잡한 음악에 지친 청자에게 다가오는 소박한 매력에 주목했습니다. 당사자들도 인터뷰에서 보사노바와 라틴, 포크에 대한 공통의 관심을 이야기했습니다. 편안하다는 말은 아무 생각 없이 만들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특정 악기만 귀를 붙잡지 않게 하고 목소리와 반주의 거리를 조절하는 판단들이 편안함을 만듭니다.

이 음반을 배경음악으로 잘 들을 수 있다는 평가는 장점이면서 질문이 됩니다. 일상에 자연스럽게 스며드는 음악을 집중해 들으면 무엇이 새로 보일까요. 소리의 작은 움직임이 실제로 풍부한지, 익숙한 분위기에 기대고 있는지 귀를 기울여볼 수 있습니다. 낮은 자극과 적은 정보량은 같은 뜻이 아닙니다.

각자의 기존 작업과 비교하기

베란다프로젝트의 첫 앨범이므로 같은 팀의 직전 음반은 없습니다. 김동률의 기존 솔로 작업과 이상순이 참여한 롤러코스터의 음악을 각각 비교의 축으로 삼겠습니다. 김동률이 긴 고백을 한 사람이 말하는 일기에 비유했다면, 이번 작업은 두 사람이 나누는 대화를 엿듣는 느낌이라는 직접 설명을 남겼습니다.

김동률의 익숙한 저음이 더 작은 반주 안에 놓일 때, 목소리의 무게가 줄어드는지 혹은 더 가까워지는지 들어보세요. 롤러코스터에서 노래와 리듬을 받쳐주던 기타의 감각은 다른 목소리와 만나 어떤 생활의 풍경을 만드는지도 비교할 수 있습니다. 같은 연주자가 들어 있어도 밴드 전체의 성격이 복제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함께 비교할 음반프로젝트 데뷔작 · 김동률의 솔로 작업과 롤러코스터의 기존 음반을 비교

김동률의 기존 작업

이전한 사람이 깊은 감정을 길게 펼치는 솔로의 인상

이번친구와 대화하며 일상의 장면을 나누는 프로젝트

이상순의 기존 작업

이전롤러코스터의 보컬과 리듬을 받치는 기타

이번다른 목소리와 포크 및 라틴의 결을 만나는 기타

협업의 방식

이전기존 팀의 작업 및 역할 분담

이번함께 머물며 만든 곡을 서울의 녹음으로 완성

일상의 루틴으로 남는 노래

같은 음반을 무언가 시작하거나 마무리할 때 반복해서 듣다 보면, 음악은 생활의 루틴이 되기도 합니다. 앨범의 가치는 새로운 경험을 주는 능력뿐 아니라 익숙한 행동을 지탱하는 능력에도 있습니다. 음반이 생활 안에서 어떤 기능을 얻는지 이야기하기 좋은 선택입니다.

〈Good Bye〉와 〈어쩐지〉를 들을 때는 큰 후렴을 기다리기보다 목소리가 한 문장을 시작하고 끝내는 동안 반주가 만드는 표정을 따라가보세요. 고별의 말이 슬픔만으로 닫히는지, 조용히 다음 장면을 열어주는지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어쩐지〉에서는 제목이 주는 작은 망설임이 실제 음악의 걸음과 어떻게 맞물리는지 각자의 언어로 말해볼 만합니다.

앨범을 처음부터 들으면 자전거를 타고, 하루가 지나고, 마음이 움직이고, 작별하는 장면들이 생활의 시간처럼 이어집니다. 모든 곡이 한 인물의 줄거리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햇빛과 바람 아래 서로 다른 장면이 놓여 있다는 느낌만으로도 음반 한 장의 세계가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귀 기울일 소리

  1. 김동률의 저음이 강하게 울리는 순간과 말처럼 가까이 다가오는 순간을 비교합니다.
  2. 기타의 리듬을 따라가며 노래가 없어도 하루의 속도가 느껴지는지 들어봅니다.
  3. 〈Good Bye〉의 끝에서 감정을 더 붙잡는지, 자연스럽게 놓아주는지 느껴봅니다.
  4. 〈어쩐지〉에서 주선율 외에 작은 반주 하나를 골라 끝까지 따라갑니다.
  5. 첫 곡 〈Bike Riding〉부터 듣는 경우와 신청곡만 듣는 경우의 풍경을 비교합니다.

함께 나눌 이야기

  • 특정한 일을 시작하거나 끝낼 때 꼭 듣는 음악이 있나요?
  • 편안한 음악을 집중해 들으면 어떤 세부가 새롭게 들리나요?
  • 익숙한 가수가 힘을 덜 주고 부를 때 더 매력적으로 느껴지나요?
  • 여행을 직접 가지 않아도 음악만으로 휴가의 감각을 얻을 수 있을까요?
  • 프로젝트 그룹에서 원래 음악가의 개성이 얼마나 남아 있으면 좋을까요?
  • 이 음반의 일상은 특별한 하루인가요, 아무 일 없는 하루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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